스페인 VALENCIA
스페인에서 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다나 ・ 2025. 2. 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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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스페인어로 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짧은 후기.
마드리드 갈 때마다 보고싶었는데.. 그리고 지난 11월 초 연휴에는 예매까지 했었으나 발렌시아 홍수로 기차가 끊겨 여행이 취소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했었지. (호텔은 다 무료취소 해주었는데 티켓값은 그냥 날림. 자연재해 사정을 1도 안봐주던 냉혈한.. 극장이나 제작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표를 판매했던 사이트를 원망했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이런 오리지널프로덕션의 공연(비록 현지어에 현지캐스팅일지라도)이 걸릴법한 세종문화회관이나 엘지아트센터 같은 극장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이미 알고 갔건만.. 스페인과 우리나라의 뮤지컬 계의 위상이랄까, 대중적 인기랄까. 그런 게 아예 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일단 이런 네임드 작품들은 호화캐스팅에 대대적인 광고에 그에 못지않은 굿즈, 이벤트 등 작품 하나로 최대한 돈을 벌고 돈을 쓸 수 있는 (써야만 하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보자! 가 느껴지는데 스페인은 뮤지컬이 그정도의 엔터테인먼트는 아닌가 싶었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연값은 감사하나, 뭐랄까.. 뮤지컬 자체 이외의 재미들이 덜 한 느낌. 결국 관객의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쓰더라도 그만큼 재미거리가 더 있으면 좋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본 작품이었기 때문에 로얄석에서 봐야 할 필요는 없다 싶었고, 극장 관중석 사진을 대충 찾아보니 아주 작고 소중한 규모인 듯 하여 2층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2층에서도 첫줄은 비싸니까 두번째 줄로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첫줄에 아무도 앉지 않아서 탁 트인뷰로 관람이 가능했고, 역시 작고 소중한 규모 덕분에 무대가 한눈에 다 들어오더라.
계단이 높아서 앞사람에 가리는건 별로 없을 듯
보는 내내 나의 아쉬움은 무대 크기와 연출장치에 관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마드리드 알베니스 극장이 비록 운치있고 고풍스럽긴 해도 내가 <오페라의 유령>을 봤던 브로드웨이에서의 무대와, 한국에서라면 상영되었을 대형 무대와 크기가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찾아봤으나 쉽게 안나옴)
어쨌든 제약이 많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나름 머리를 잘 쓰긴했는데.. 과연 그게 최선일까 싶었다.
무대 크기도 크기지만, 제작비의 부족인가? 내용이 바뀌면서 무대 전체도 바뀌었다면 좋았을 법한 타이밍에도 고작 회전무대가 120도 정도 돌아가고 마는 부분에서 좀 많이 아쉬웠다.
'그' 샹들리에
그리고 조명.
특히 극의 초반부에 팬텀과 크리스틴이 처음 만나 팬텀의 지하아지트로 그녀를 데려가는 부분이 압권인데, 뉴욕에서는 천장에서부터 다리를 점점 기울게해서 진짜 내려가는 느낌을 주었던 반면 (보면서도 참 신박한 연출이라고 느꼈었다) 여기는 그냥 뒤로 사라졌다가 바로 "여기 지하임"이라는 느낌으로 전환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 부분에서 조명까지 매우 아쉬웠는데.. 팬텀이 크리스틴을 데리고 사라지자마자 갑자기 중앙 조명이 발작(?)을 해서 완전 눈뽕이 터져버린것 (사람들 다 궁시렁거림)..
그리고는 그 잔상때문에 안 보이는건지 아니면 조명 자체를 어둡게 한 건지 팬텀이랑 크리스틴이 지하에서 나타나는게 한참동안 안 보였다 ㅋㅋ큐ㅜ큐큐
물론, 이런 눈뽕도 곧 용서가 되었는데.. 지하 아지트에서 둘이 부르는 타이틀곡 The Music of the Night 에 난 울고 있었던 거쥐... ㅠㅠ
지하로 가는 통로처럼 또 아쉬웠던 부분이 지붕(옥상?)에서 라울과 크리스틴이 나오는 낭만적인 씬이었는데, 그 지붕도.. 하아.. 누가 이걸 지붕으로 보나요. 돈 좀 더 쓰지..
하지만 이것도 조금 참으면 괜찮다. 라울과 크리스틴의 타이틀 All I Ask of You 를 부르기때문이죠.
phantom아니고 fantasma여야 하는거 아니냐..
2막 시작하면서 나오는 가장무도회 장면.
전체 극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에 꼽을 정도로 음악이나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의 옷차림 덕분에 화려함이 넘치는 장면이라 과연 어떻게 '현지화'할까 아주아주 궁금했었다.
아 물론.. ㅎㅎ
결국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제작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인가요.
등장하는 배우들도 뉴욕대비 아마도 3분의 1수준. 그런 와중에 무대는 채워야하니 진짜 배우들 말고 마네킹(!)을 데려왔더랔ㅋㅋㅋ
각 배우마다 마네킹 한명씩 손잡고 춤추는데 세상에, 그 마네킹에 바퀴가 달려있어서 비록 영혼은 없지만 당기는대로 미는대로 어찌저찌 움직이기는 하니 나름 그럴싸함.
양심은 있었는지.. 이걸로는 여전히 미안했던지 2층 통로에도 (사람) 배우들을 몇명 배치해두니.. 결과적으로 많이 욕할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공연> (이게 나온지 벌써 14년전이야.. ㅎㄷㄷ)를 다시 보니 원작(혹은 돈 많은 뉴욕이나 런던 프로덕션)보다 간단하게 표현하거나 아니면 아예 생략해버린 장면이나 무대장치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아쉬움을 상쇄해주는 것이 결국 배우들의 실력일텐데..
팬텀, 크리스틴, 라울 모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음색이라 좋았고 가창력들도 꽤 훌륭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크리스틴. 노래는 잘하는데 표정이 단조롭고 몸연기가 아쉬웠다. 멀리서 봐서 그런지 꽤 많은 부분에서 그냥 가만히 서있는 마네킹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연기가 유일하게 괜찮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긴 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묘비씬. 본인의 단독씬이라 그것만 많이 연습했나보다. 후후
팬텀은.. 사실 어느날 TV 아침프로같은데 나와서 팬텀이 노래하는 거 보고 뮤지컬도 보고싶었던 건데.. 역시 기대한 만큼 잘 하더라.
아르헨티나 출신 배우 헤로니모 라우치.
내가 <25주년> 영상에서 흠모했던 라민카림루보다 잘하면 잘하지 못하진 않음.
특히 배가.. 좀 나왔던가? ㅋㅋ 슬림하고 핏한 라민카림루보다 체격 자체가 더 크고 성량도 더욱 기차화통 삶아 먹은거 같아서 팬텀의 괴수같은 이미지에 더 잘 어울렸던거 같다.
뉴욕에서 본게 벌써 넘 오래되었고 그나마 기억이 나는게 <25주년> 영상인데, 그래서 마드리드 공연을 이들과 비교하는것은 불공평한 거 알고 있다.
뮤지컬 실황이긴하지만 영화처럼 배우들을 클로즈업해서 만든, 무대장치도 최고고퀄로 찍은 영상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면에서 최고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데, 코딱지만한 극장, 그것도 2층 멀리서 본 마드리드 공연을 여기에 비교하는 건 부당하지.
하지만 원작(?)과 비교해서 로컬 프로덕션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현지어로 옮겨졌을때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한국판 <오페라의 유령>을 안 본 나로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서울이든, 런던이든, 뉴욕이든 두 세번은 더 봐도 좋겠다. 작품 자체, 특히 노래가 다른 그 어떤 뮤지컬들과 비교해도 최고로 꼽을 수 있으니까. (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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